어느덧 가을도 막바지로 가고 있습니다. 낙엽이 떨어지고, 그리움이 떨어지고…소중했던 기억마저 한순간 낙엽처럼 사라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인간이니까요.
그리스의 여신 레테(Lethe)는 망각의 여신입니다. 불화의 여신 에리스(Eris)의 딸이죠. 에리스는 트로이 전쟁을 일으킨 장본인입니다. ‘가장 아름다운 자에게’라고 쓰인 황금 사과를 던져 여신(헤라. 아테나, 아프로디테)들에 질투를 유발시켰고, 끝내 그 사과로 인해 트로이 전쟁이 일어나게 됩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레테의 이름을 딴 망각의 강이 흐른다고 믿었습니다. 슬픔의 강 아케론을 건너, 탄식의 강 코키투스와 불의 강 플레게톤, 증오의 강 스틱스를 건너면 마지막으로 망자(亡者)들은 망각의 강인 ‘레테의 강’을 건너게 됩니다. 죽어서 저승으로 가는 망자들은 누구나 이 강물을 마셔야 하고, 이 강물을 마시면 이전의 기억을 모두 잃게 되는 것이죠. 예나 지금이나 ‘망각(妄覺)’은 신이 주신 고귀한 선물인 거만큼은 틀림없는 거 같습니다. 편리하기 때문이죠.
우리 주변엔 이 ‘망각’을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하는 사람들이 꽤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정치인들이 그렇습니다. 어느 정치인은 자신이 했던 행동을, 어느 정치인은 자신이 했던 말을 망각하고, 때만 되면 또다시 국민의 심판을 받겠다고 얼굴을 내밀곤 합니다. 가장 성실하고, 가장 진심인 척 보이는 가면을 쓰고 말이죠.
우리도 망각에 빠진 걸까요. 4년에 한 번씩, 우리는 우리 자신도 모른 채 이 가면에 속곤 합니다. 그리고 또다시 4년을 그들에게 잊혀진 채로 살아가게 됩니다. 이쯤이면 ‘망각’은 편리한 것이 아니라 우울한 건 아닐까요?
다시 4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모든 분들이 ‘망각’이 아닌 ‘기억’을 해주시길 바랍니다. 유권자들이 기억하는 한 정치인들의 망각은 무뎌진 칼날이 될 테니까요. 하운제에서 생각했습니다.
WEEKLY저널 발행인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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